기다림.
아들의 수술이 진행된 2024년 8시 30분부터 10시 40분까지의 시간은 지금껏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아들과의 '기다림' 시간을 떠올려 보니,
첫 번째 기다림은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까지 가졌던 때였습니다.
이때의 기다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얼른 만나고 싶은 설레고 행복한 기다림으로 기억됩니다.
두 번째 기다림은 아들이 2학년 때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돌아오지 않았던 때가 떠오르네요. 이 때는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뛸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 있을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초조하게 기다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아들이 돌아왔고,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만난 아들을 보며 꼭 안아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2024년 2월 5일의 기다림.
이 기다림은 정말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그런 기다림이었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애써 담담한 척, 괜찮은 척 아들에게,
"잘하고 와, 아들. 엄마가 기도할게."
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수술실 문이 닫히자마자 뜨거운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울컥, 그때의 감정이 올라오네요.
수술실 밖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수술 현황판을 바라보는 것,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환자 보호자 대기실 안의 다양한 사람들도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수술실로 가족을 들여보냈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별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대기-입실-마취-수술-회복-퇴실'
수술 현황판의 진행단계 표시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얼른 다시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렇게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OOO보호자님! 회복실로 들어가실게요."
하는 간호사의 음성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보호자 1명만 가능하다고 하여 남편이 부리나케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아들과 남편이 나오기를 또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아까의 기다림의 감정보다는 한결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4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병실 담당 간호사가 내려왔고, 이불을 꺼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고 녹색 수술 이불을 덮고 아들이 나왔습니다.
힘들었는지 이미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고, 그 모습에 아들 앞에서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고생했어, 아들. 잘했어, 아들. 사랑해,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 주었던 말입니다.
이토록 슬프지만 아름답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던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들아,
오늘의 기다림으로 엄마는 너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간절한 기다림이 사람을 어떻게 더 성숙시켜 주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고맙고, 대견하고,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아들! 」